길고양이 밥 주는 건 슬프다.
- 포댕댕 삼냥이 일상 . 길냥이 이야기
- 2022. 5. 14.
수리는 2019년 12월 19일 처음 만났다.
용감하게 내 앞에 나타나
당당하게 밥 달라고 하던 예쁜 수리.
날씨가 추워 캔을 못주고
사료만 줘도 맛있게 잘 먹던 수리
수리의 이름은 그냥 이날 갑자기
수리수리 마수리가 생각이 나서
즉흥적으로 지어 준 이름이다.
수리는 또롱이(노랑이 엄마)랑 닮았다.
내가 추측하기로 또롱이랑 한배 형제 거나
또롱이가 낳은 아이 거나 둘 중에 하나 아닐까?
생각했었다.
또롱이는 콧등에 갈색 줄이 있는데
수리는 흰 줄이 있다.
수리는 자주 볼 때는 자주 보고
못 볼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본다.
내가 나가면 고양이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잘 안나타 난 거 같다.
나 혼자 밥 챙기고 있을 때는 짠 하고 나타나
캔을 두 개씩 먹고 가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수리.
3년 전 영상을 보니
수리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잘 지냈어?
난 수리가 수컷인지 암컷 인지 3년 넘게 몰랐다.
그런데 이날 알았다.
밥 먹고 일어선 수리 양쪽 배가 볼록 했다.
세상에나 너도 암컷이었구나....
밥 다 먹고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옆 자동차로 자리를 옮겨 나를 빤히 쳐다봐서
캔을 하나 더 따서 줬더니 그걸 다 먹고
그제야 배가 찼는지
자리를 떴다.
수리를 또 만났다.
구충제를 못 먹인 수리에게
구충제를 섞어서 캔을 줬다
맛있게 잘 먹는 수리.
처음 만난 날 나에게 사료를 얻어먹고 가면서
뒤돌아 보며
나에게 깜빡깜빡 눈인사를 하고 가던
예쁜 고양이.
수리를 보니까 또롱이 생각이 많이 난다.
마지막 만나기 며칠 전까지
건강해 보이던 또롱이가
갑자기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얼굴은 침범벅에 눈은 흰 막이 싸여
앞을 잘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용케 밥자리를 찾아 걸어오고 있었다.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찾아온 걸까..
내가 놀라서 부르니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내 앞을 지나가면서도
다시 돌아와 킁킁 거리고
내 다리에 머리를 쓰윽
부비고 갔다.
처음으로 내 가까이 왔다.
약이라도 먹이려고 쫓아갔는데
철문 틈으로 들어가서 놓쳐 버렸다.
또롱이를 잡아서 살려 보려고
포획틀을 새벽에 받아와서
밤새 찾아다니고
몇 날 며칠 온 동네 구석구석
다 뒤지고 다녔는데
또롱이를 만나지도 못하고
혹시 별이 됐다면
사체라도 찾길 바랐는데
찾지 못했다.
3월 15일 오후 6시에 본 또롱이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또롱이가 아픈 게 다 내 탓 같았다.
길고양이 밥 주는 건
누가 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 슬픈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는 이별이 찾아올 수 있는
이 길냥이들은 나에게 잔인한 묘연이다...
나는 캣맘이 아니다.
밥자리가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밥을 주기 시작했고,
길고양이들이 천덕꾸러기 취급받지 않고
편하게 밥 먹게 하고
이웃분들 불편하지 않게
동의를 받고 청소를 했다.
햇수로 4년째 밥 주고 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길고양이 밥 준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밥을 주기 시작하니까
단지 내 다른 분이 밥 자리를
떨어진 자리에 만드셨다
그분이 주는 밥자리는
사료 다 엎어 버리는 아저씨가
내 밥자리는 그냥 두신다.
주차하실 때도 내가 밥 주고 청소 하기
불편하지 않게 주차도 신경 써서 해주신다.
나는 내 집 앞 길고양이들이 굶지 않고
최소한 생명 연장할 수 있게
돌봐주는 사람이다.
나는 이 고양이들에게 엄마가 되어 줄 수 없다.
내가 돌보는 길고양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는 이유는
내가 잊지 않기 위해서 이다.
나와 길고양이들 추억 일기 같은 거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존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길냥이들이다.
이 길냥이들이 이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고
살았다는 걸 나 말고 한 명이라도
기억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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